해청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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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잉청저우 제도 연방 지도 | |||||
현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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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 ![]() | ||||
지역 | 해청위 지역 | ||||
지역어 | 영어, 한국어, 류큐어 | ||||
면적 | 558 km2 | ||||
지역번호 | 05[1] | ||||
시간대 | GMT+8 | ||||
인구 | 1,411,152명 (2020년 기준) | ||||
인구밀도 | 2,528.95명/km2 | ||||
하위 행정구역 | 3시 {{{부}}}부 진 3향 {{{정}}}정 {{{촌}}}촌 {{{목}}}군 {{{군}}}군 {{{현}}}현 | ||||
상징 | |||||
행정구역 상징목 | 맹그로브 | ||||
행정구역 상징화 | 맹그로브꽃(...) | ||||
행정구역 지방자치체 | |||||
현지사 | 헝닝만(孔寧敏) | ||||
행정구역 정부 소재지 | 안밍 시 | ||||
행정구역 의회 소재지 | 안밍 시 | ||||
행정구역 감찰원 소재지 | 안밍 시 | ||||
행정구역 고시원 소재지 | 안밍 시 |
해청위현(중국어: 海青威縣, 민난어: 海青威縣, 하카어: 海青威縣, 광둥어: 海青威縣, 우어: 海青威縣, 일본어: 海青威県, 오키나와어: 海青威縣, 영어: Haichingyu County, 프랑스어: Conté de Haichingyu, 독일어: Provinz der Haichingyu, 잉청저우어: Haichingyu Sien, 타갈로그어: Probinsiya ng Haichingyu)은 잉청저우 제도 연방의 현이다. 1980년대에 잉청저우의 비대화에 대비한 수도 이전을 위해 해저 지형을 간척하여 만든 해청위 섬만을 관할 구역으로 삼고 있으며, 이 때문에 2020년 잉청저우 제도 연방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유일한 연방특별구로 존재했다. 그래서 연방특별구 시절에는 미국의 워싱턴DC 만큼이나 지방정부의 권한이 낮은 것은 아니 지방정부의 권한이 다른 연방주체의 지방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잉청저우 제도 연방의 수도로써 기능하는 점이 미국의 수도로 기능하는 점을 가진 워싱턴DC와 공통점(국가의 수도로 기능한다)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해청위현은 연방특별구 제도가 폐지되며 독자적인 현으로서 연방을 이루는 주체가 된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잉청저우 제도 연방의 워싱턴DC"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지리[edit | edit source]
1980년대 후반 수도 이전을 통해 조성된 인공섬이며, 그 전에는 가라앉은 산호초 군락과 해저 산으로 구성된 해저 지형에 불과했다. 해청위 현을 구성하는 유일한 현의 영토(...)인 해청위 섬은 대체로 평탄한 지형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으로 봐도 인공섬 조성 이전의 지형이었던 해산에 대한 흔적은 남아있는데, 일부 경관 보존 겸 식수, 농업용수 등을 해결하기 위해, 가라앉은 산호초 부분의 전후로만 간척을 하여, 섬의 중간에 대체적으로 깊었던 해저지형만으로 이뤄졌던 부분에 인공적으로 담수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역사[edit | edit source]
해청위로 수도를 이전하기 이전에 수도였던 잉청저우 시가 존재했던 잉청저우 섬은 국공내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전후 베이비붐이 맞물리면서, 3백만 정도의 인구가 2배를 넘는 7백만으로 불어났고, 그 결과로 인해 잉청저우 섬 일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초과밀 상태를 겪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발전과 경제의 발전으로 이들을 부양할 여력이 되었던 점 때문에, 경제 성장을 늘려가자고만 했지, 1980년대 이전에는 수도 이전이나 분산을 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자, 잉청저우 시 300만명에 지금의 신잉청현에 해당하는 시낭/웨이칭 양 현의 인구의 합이 8백만명이라는 과히 심각한 수치가 나오고야 말았고, 그에 이르러, 잉청저우 섬 북부와 중부의 도로는 매일 교통체증으로 터져 나갔고, 잉청저우 첩운은 지금의 잉청저우 직할시 시역 곳곳으로 뻗어나가면서 곳곳에서 만원에 이르는 등의 과밀화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고층 농장 기술의 개발이 없었다면, 더는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으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게 불가능했을 정도가 되었으며, 이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추가 지출을 초래하였다.
이에, 잉청저우 제도 연방 연방행정원 산하에 임시위원회로써 신수도조성위원회가 1981년 12월 출범, 곧바로 신수도 조성지를 6곳 꼽아서 입지 선정 등에서 경합을 벌인 끝에 1983년 9월에 지금의 해청위현 일대의 자리를 신수도 부지로 지정해, 1985년에 조성 공사에 들어가 1990년까지 조성한 뒤에 해청위 연방특별구를 출범시켜, 수도를 이전하기로 했다. 해청위현(당시 해청위 연방특별구)이라는 신수도 조성의 대사업에 국운을 걸고 진행하였음에도 산호초나 해산을 사람이 살 법한 어느 정도 크기의 섬으로 만들어서 신수도를 조성하는 어려운 사업이다 보니 1985년부터 1990년까지 5년 동안 국내의 건설사들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국내 건설사 이외에도 해외의 건설사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하여, 중화민국의 푸젠건설, 상해건축 등과 한국의 현대건설, 청구주택, 삼성건설에게까지 손을 벌릴 정도로 많은 인력과 중장비, 공법 등을 총동원하고, 세계 곳곳에서 많은 골재를 사들여 해청위현의 부지에 쏟아붓는 등의 사업을 벌이고, 이를 평탄화 하는데 많은 고생이 들고 드는 작업이 소모되어, 누적 단위로 수천 명의 부상자가 평탄화 과정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이럼에도 신수도 조성을 중단 혹은 백지화 하려는 세력이 수도 없이 백지화 및 중단을 관철시키고자 시도했음에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잉청저우의 과밀화가 날로 심화되어서 공사를 중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도시화로 갈 곳을 잃은 농민이 나오기까지 하면서, 이들의 해청위 이주 및 개척을 약속하기까지 하며 공사는 계속 진행되기로 합의되었다. 그로써 신수도 해청위 조성은 1990년까지 예상대로 진행되어, 해청위, 안밍, 신메이리다오 3개의 도시 계획 지구와, 진좡, 소라카미, 에이세이슈마츠우라 3개 향을 개발/조성, 해청위 신수도를 조성하였다.
이후 1990년 해청위 연방특별구를 연방총통령에 근거하여 출범, 1993년까지 법제 정비[2]를 마침을 통해 해청위를 수도로 지정해 천도했고, 1993년에서 1997년까지 연방행정원의 이전을 시작으로 연방오권(연방정부)의 소재지를 해청위로 옮김으로써 수도 이전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2020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독자적인 현으로 개편되며 수도주 비스무리한 지위에 오른 해청위현이 되며 지금에 이른다.[3]
경제[edit | edit source]
오권분립으로 이루어진 연방정부의 소속 공무원과 공영방송 재단 본부 및 그 가맹 방송국인 해청위 수도 방송의 종사자, 그들의 가족들, 도시화로 갈 데가 없어져 해청위로 온 일본계 및 한족 내성인계 농민을 중심으로 약 14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관계로, 북부의 농업과 남부의 사용자 서비스업 및 연방정부 산하 국가기관/공공기관 및 그 관련 산업이 발전해있다. 이를 다른 말로 옮기면, 잉청저우 제도 연방에서 모든 연방정부 출자 공기업의 본부는 해청위 연방특별구에 있다는 말이며, 말 그대로 경제적 주도권이 아닌, 인위적으로 부여된 정치적 주도권을 가진 셈. 애초에 해청위현의 전신인 해청위 연방특별구를 조성한 목적 자체가 잉청저우의 과밀화를 덜어내고자 인위적으로 수도, 즉 정치적 주도권을 이전하고, 잉청저우 제도 연방의 식량 수급 문제를 완화하고, 이 당시 도시화로 갈 곳을 잃은 일본계 및 한족 내성인계 농민을 챙기고자 한 것이었던 만큼, 이는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문화[edit | edit source]
연방정부 하 공공기관과 연방정부 출자 공기업 본부의 소재지라서, 이들을 타겟으로 한 고급문화가 발전해있다. 인위적으로 수도 이전을 위해 조성된 지역으로서, 출범 30년이 다 됬음에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문화가 발전하지는 못했다. 20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