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십자군 전쟁 (민주의 여명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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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십자군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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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력의 초기 정복 시도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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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기독교 세력
틀:나라자료 이집트 콥트 정교국 |
이슬람 세력 우마이야 왕조 | ||||||
지휘관 | |||||||
추가 예정 | 추가 예정 |
제 1차 십자군 전쟁은 660년부터 740년까지 벌어진, 민주의 여명 세계관이 현실 세계와 다른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그 시작점 상의 역사적 사건이다.[1]
시작[edit | edit source]
632년부터 시작된 이베리아 반도에서 페르시아, 예맨에서 레반트에 이르는 넓은 땅 일대에서 벌어진 우마야드 왕조의 대규모 정복은 660년을 전후하여 이슬람교로 개종한 비아랍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등 차별을 두며 피정복 민족에게 종교의 자유를 댓가로 가혹한 대우를 하는 것으로 오인되며 결국 강압적인 정복으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에 의해 고통 받으며 암묵적으로 동화를 강요 당한 이집트인, 로만 아프리카인, 베르베르인, 누비아인을 시작으로 정복이 완료된 쪽의 민족이 대규모로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은 동로마 제국과 서유럽 게르만 계 왕국들의 지원을 받으며 이들의 반란을 성공시키며 그들의 나라가 세워졌으며, 이들은 몇 차례의 영토 확장을 통해 710년 경 이슬람 정복자들을 후술하는대로 둘로 나눠버릴 정도가 되었다.
이슬람 세계의 반격[edit | edit source]
이러한 반란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서부 정복지를 상실한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 및 모로코 지역을 정복하고 있던 세력과 본국으로 나뉘었으며, 이베리아 반도 및 모로코 지역의 이슬람 정복자들은 격리당하고 있었다. 결국, 이슬람 세력은 그들과의 싸움을 통해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 지역의 정복자들과 본국을 다시 이어서 정복을 진행하기 위해 이집트 재침략을 시작으로 재차 정복에 들어갔으나, 이미 침략 이전부터 축출당하면서도 방어적인 공세를 취하며 지속적으로 싸우는 것이 서로의 국운을 걸고 싸우는 양상으로 바뀐 것에 불과해, 이슬람의 정복전쟁이 장기화되었다.
십자군으로의 승격[edit | edit source]
그 사이 722년 이베리아의 정복이 기독교를 믿는 옛 서고트 및 로만-이베리아인 반란 세력의 코바동가 전투 승전으로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성립, 북상하던 정복대마저 726년에 치러지게 된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맞이하고, 바스크인이 바스크-나바라 왕국을 만들게 되어 바스크 지역에서 아랍인과 무어인을 축출하려고 하면서 교황에게 지원을 요청, 교황은 기존의 이슬람 세력에 반대하던 전쟁들까지 한데 묶어 십자군을 최초로 선포하게 되었다. 결국, 프랑크 왕국이 나르본을 수복한 뒤 카탈루냐를 수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유럽 국가들과 동로마 제국은 반란에 성공하여 국가를 이룬 북아프리카의 제왕국들과 함께 아랍에 맞서 싸웠고,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의 반 이슬람 세력 전쟁은 1차 십자군 전쟁으로 승격되었다.
결과[edit | edit source]
이를 통해 이슬람교의 정복이 아랍인이 다수를 점하던 아라비아 반도와 레반트에서 멈췄다. 결국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는 자신들의 문명을 보존하여 에티오피아와 함께 남방 정교회의 적통이 되었고, 아프리카 로망스어를 쓰던 로만-아프리카인은 이후 카르타킨 왕국이 봉건제에 의해 여러 국가로 나뉘고, 모로코 등에서 투아레그 계열의 왕조가 탄생하면서 이들 국가가 어느 정도 부국의 위치에 서는 등, 현재까지도 북아프리카가 강성한 지역으로 남는 데에 이바지 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로망스어군의 지역적 분화마저도 더 빨리 굳어지는 등의 언어적 변화도 존재했다.
그와 함께 레반트에 있던 마론파를 비롯한 아랍 기독교인은 팔레스타인에서 레바논 해안가를 거쳐, 시리아까지 뻗은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고, 아시리아인 등의 기독교를 믿던 정복 지역의 소수민족 역시 아랍 기독교인들과 똑같은 절차로 메소포타미아, 즉 이라크 일대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확보하였다. 이후 이들은 9세기에 자신들이 자칭하며 선포한 2차 십자군을 통해 아랍 이슬람 세력을 축출해내며 자신들의 국가를 만들었고, 이라크와 레반트 국가들의 민족 및 종교 분포에 큰 영향을 끼쳤다.
- ↑ 성지 예루살렘이 위협받을 때 만들어진 현실의 십자군보다도 수백년 앞서서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