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디드 팔레스타인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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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디드 팔레스타인 계획(영어: new-palestine plan, 아랍어: خطة فلسطين الجديدة, 히브리어: תוכנית פלשתינית חדשה)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시나이 반도와 요르단으로 이주시키고, 시나이 반도에서 이주한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베두인과 연합해 시나이국을 세우게 한 계획이다.

출발 : 이중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잉글랜드[edit | edit source]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시온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뭉치던 유대인에게 아서 밸푸어가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도록 지지하고 밀어주겠다는 벨푸어 선언을 발표,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통해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던 북부 아랍 지역을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분할해서 가지고, 잉글랜드는 저 두 선제 행동에 따라, 1917년에 후세인-맥마흔 서한에서 팔레스타인을 제외하고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우게 하겠다고 약속하게 되면서, 결국 아랍인-유대인 양 민족과 영국 간의 이중계약을 피하게 되었다.

실시 : 팔레스타인의 인위적 민족 교체[edit | edit source]

그에 따라, 잉글랜드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에게 자발적인 이민을 받아서, 요르단과 시나이 반도로 이동하게 하려고 하면서, 자디드 팔레스타인 계획을 수립했다. 해당 계획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시나이 반도와 요르단[1]으로 이주시키고, 시나이 반도에 베두인과 연합해 시나이국을 세우게 한 계획으로서, 밸푸어 선언에 기초한 팔레스타인의 인위적 민족 교체를 골자로 하는 계획이다.

때마침, 잉글랜드가 위임통치 중이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산하에 있던 요르단 지역에서 하심 왕가를 중심으로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이 세워질 때 자신을 따르는 국민이 필요했던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은 이러한 자발적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자디드 팔레스타인 계획을 위한 요르단으로의 팔레스타인 아랍인 1차 이주를 결행하는 무하마드 야데우 작전을 펼쳐, 1920년부터 1924년까지 팔레스타인 아랍인 인구 총 58만 9천여 명(1922년 기준) 중에서 28만 8천여명을 요르단으로 이주시켰다. 나머지 30만 1천여명은 팔레스타인에 일단 남았다.

그와 동시에 잉글랜드는 자디드 팔레스타인 계획을 이집트에 전하며, 이집트에서 시나이 반도를 떼서 시나이 자치령을 출범시켰으며, 1921년부터 1941년까지 시나이 반도에 남은 30만 1천여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그들의 자손을 전부 시나이 반도로 이주시켰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정착한 곳을 제외한 팔레스타인 전 지역은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에 따라 정착한 몇몇 도시나 키부츠들을 빼고는 죄다 무주지가 되었는데, 이는 미국[2]을 제외한 유럽 각국과 그들의 아랍 지역 식민지, 아랍의 각 국가들과 에티오피아, 중화민국[3]이 유대인에게 반유대주의로 시름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과 구약성경에서 규정한 유대인의 땅을 되찾을 때가 왔다는 선전을 통해서 유대인들을 끌어 모으며,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각지에서 1942년까지 1900년 기준 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유대인 총 인구 1100만명의 2/3에 해당하는 670만명 가량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식으로 해결했다.

그 이후에 나치의 유대인 차별 및 학살(홀로코스트)을 피해 140만명이 팔레스타인으로, 나머지 100만명이 미국으로, 90만명이 아무르 공화국에서도 아무도 안 살던 허허벌판 그 자체 수준이었던 곳으로써 유대인을 피신시킬 장소로 마련된 신설 비로비잔주[4]로 망명하면서, 잉글랜드가 의도한 민족 대체 및 밸푸어 선언 이행은 완수되었으며, 홀로코스트는 결국 실패하게 된다.

결과 : 이스라엘과 시나이국의 수립[edit | edit source]

이렇게 민족의 대체가 완료된 팔레스타인과 시나이에서는 영국의 주도로 1946년 주민투표에 의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의결, 1948년에 이스라엘국과 시나이국을 수립하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 이후 시나이국은 팔레스타인 아랍인 좌우파와 베두인 좌우파가 정국을 두고 다투는 4당제와 그에 기반한 좌익과 우익의 양 정당연합 체제가 발전하면서 정치적 안정과 동시에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갖추면서 지금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을 완성했고,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뤄낸 만큼, 먼저 팔레스타인 일대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같이 대규모로 관개를 통해 농업을 발전시키고, 그 다음 1960년대 이후로 경공업과 금융업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산업을 부흥시키고 양당제가 1990년대 중반까지 구성되며 극도의 정치적 안정이 이뤄지는 등, 서로가 상생하는 결말을 맺게 되었다.

1948년의 공화 선언으로 공화국이 되고, 정교분리 사회 속 종교 지도자로만 남게 된 하심가의 옛 왕이 남은 요르단 공화국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는 평등을 인정한, 상당한 진전 속에서 전(前)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기존 요르단 아랍인과의 화합과 조정 가능한 갈등에 기반한 민주 통치가 1970년대에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전환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어, 결국 자디드 팔레스타인 계획은 중동 모두에게 해피엔딩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 전(前) 팔레스타인 아랍인 중에서도 시나이국으로 이주한 기독교도의 경우엔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는데도, 아랍 세계의 주를 이루는 이슬람교도들이 이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대놓고는 아니여도 차별을 많이 받은 여파로, 시나이국 내에서 기독교를 믿는 전(前) 팔레스타인 아랍인 42만명(1970년 추산)은 1970년 레바논이 시나이국과 협상하여 이들을 데려오기로 합의, 1971년 11월부터 1975년 9월까지 전부 레바논으로 수송하는 백향목 작전을 통해 레바논으로 이주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 때에도 레바논은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하고 있던 상태여서, 이들을 먹여 살릴 역량이 생겨났다 보니, 이러한 협상이 가능했다고 한다.

각주[edit | edit source]

  1. 현재는 1948년의 공화 선언으로 공화국이 되었지만, 그 이전엔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이라는, 하심 왕가에서 왕위 계승 방식으로 왕을 맡는 왕정 자치국이었다.
  2. 애초에 미국은 다민족국가이다. 민주의 여명 세계관에서는 분기점 및 배경을 고려한 미국 원주민 비중의 증대로 인해, 이주 백인 및 남부의 원주민 제민족이 주도하는 다민족국가화 되며 이러한 색채가 더 강해졌다.
  3. 당시 카이펑의 유대교도들이 존재
  4. 현재는 비로비잔-동아시아 유대인 자치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