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코스트 직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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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코스트 | |
중국어: 東岸直轄市 일본어: 東岸(イーストコースト)直轄市 영어: Eastcoast Metropolitan City | |
별명 | The Eastern innovation(동방의 혁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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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 |
나라 | ![]() |
행정구역 | 6구 |
시청소재지 | 이스트코스트 직할시 센트럴 구 센트럴 가 5980 |
시장 | 이스터 미들턴(진보당) |
부시장 | 서율권(진보당) |
지역어 | 한국어 이스트코스트 방언 |
역사 | |
설립 | 1879년 |
인구 | |
인구 | 5,351,809 명 (2020년) |
인구밀도 | 2,896 명/㎢ |
광역인구 | 6,522,884 명 |
지리 | |
면적 | 1848 ㎢ |
해발 | 15 m |
기타 | |
시간대 | YWST (UTC+8) |
지역번호 | +83 02 |
이스트코스트 직할시는 잉청저우 제도 연방의 중앙에 위치한 잉청저우 제도 연방의 직할시이다. 잉청저우 도시권에 속하는 위성도시지만, 현실 대한민국의 경기도의 수원시 마냥 잉청저우의 위성도시들과 같이 베드타운이 아닌 독자적인 대도시로서 기능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잉청저우 도시권과 이스트코스트 도시권을 나눠놓아 세분화하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는 잉청저우와 이스트코스트가 따로 커왔고, 서로 달랐으나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1970년대 후반 이후 도시화 완성 단계에 이르러 잉청저우와 이스트코스트가 비로소 한 광역도시권으로 연담화 되었기 때문이다.
인구[edit | edit source]
연도 | 인구 | ±% |
---|---|---|
1870 | 27,815 | — |
1880 | 63,819 | +129.4% |
1890 | 144,719 | +126.8% |
1900 | 308,412 | +113.1% |
1910 | 522,891 | +69.5% |
1920 | 714,919 | +36.7% |
1930 | 738,331 | +3.3% |
1940 | 752,915 | +2.0% |
1950 | 789,291 | +4.8% |
1960 | 1,531,015 | +94.0% |
1970 | 1,968,415 | +28.6% |
1980 | 2,559,443 | +30.0% |
1990 | 3,413,338 | +33.4% |
2000 | 3,959,433 | +16.0% |
2010 | 4,627,176 | +16.9% |
2020 | 5,351,809 | +15.7% |
지리[edit | edit source]
잉청저우 제도에서 세번째로 빠르게 형성된 곳이며, 580만년 전에 형성되었다. 화산대지와 지금은 화산활동을 중지한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종상화산인 사화산인 스미스 힐이 결합해, 중앙부에는 완만한 구릉 지형이 펼쳐지다 해안으로 내려오면 5~20km 정도 펼쳐진 해안평야 지형이 펼쳐지다 바다에 이른다. 이들의 기반토는 전부 현무암 풍화토이다. 이스트코스트는 위도도 낮은데다 북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해서 당연히도 열대우림기후이며, 스콜이 자주 세차게 내리는 특성 상, 상시 방재가 이루어 질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린다. 여기도 태풍이 자주 지나가는 자리 중 하나이다. 대표적인 강으로는 뉴온타리오 강과 레스트 강만이 존재할 뿐이며, 이들은 수량도 비교적 낮은데다, 제주도 마냥 복천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정치[edit | edit source]
틀:이스트코스트 시의회 의석 틀:이스트코스트 직할시 시장 한국계 아니면 미국계가 거주하는 특성상, 이들을 따라 선명히 갈리는 보혁구도로 인해 진보당과 국민당의 격렬한 표 대결이 이뤄지는 양당우위 지역이다.
경제[edit | edit source]
이스트코스트는 미국인이 주요 민족의 지위에서 한국계와 결합해서 독립을 유지해서 그런지 미국이나 한국의 대중문화를 수입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대중문화와 관련된 산업이 특화되어 있다. 유명 음반사들의 지사가 이스트코스트의 센트럴 구 북단에 모여있는 것을 보고 그 밀집한 거리를 음반거리라고 부를 정도니 말 다한 셈. 심지어 패스트푸드 산업도 발달했다 보니, 잉청저우보단 문화산업과 패스트푸드 판매업이 발달했으며, 이런 연유로 수많은 대중문화 예술가들과 패스트푸드 애호가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이스트코스트 경제의 주 수입원으로 작용하여 잉청저우보단 낮은 1인당 GRDP(4만 8천불)를 기록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잉청저우는 생산-소비 복합도시인 데 반해서, 이스트코스트는 순도 100% 소비도시인 셈.
문화[edit | edit source]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무인도였던 이 섬을 미국인들이 식민지로서 개척하고, 한국인이 미국인들에 고용되어 그 다음에 들어온 탓에다가, 상기한 것의 결과인 서양열강의 내습으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서양풍 문화가 남았다. 대개 주거문화가 많이 남아있어서, 유럽풍의 주택이나 미국풍의 목조/석조 주택이 이스트코스트의 센트럴 구와 하버 구에 걸친 구시가지에 상당히 많이 남아있다.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현재는 한국과 미국의 대중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이유로 한류가 기승을 부리며, 10대~20대 여성 중엔 사생팬이 좀 있다(...) 그런데 이거 빼고 할 말이 없다. 정말로 빈약한 문-화 ㅠㅠ... 여기는 주요 아이돌 사생팬, 양덕들 아니면 청년이나 청소년은 살 수가 읎다! 취소선에 나온 내용이 사실인 지 잉청저우 사람들은 양덕에 대해서는 터치를 안하나, 아이돌 사생팬 계층에 한해 타 부류에 대한 존중도 없고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여 조롱거리로 삼다가 빈번하게 폭행사건이나 언어폭력 사건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1], 학창시절의 경우도 양덕 등으로 대표되는 서브컬쳐를 향유하는 경우는 어느정도 세력이 있어서 존재가 가능하지만, 각 아이돌 사생팬 간에 상호 배척성이 높은 편이다. 심지어 주요 아이돌 사생팬들이 청소년/청년 계층을 쥐고 누르고 있다. 그렇다고 친구 될 사람은 친구 다 되지만. (...) 아무튼, 한국과 미국에서 따올 건 다 따왔다 보면 된다.
역사[edit | edit source]
본래 남방의 동남아/북태평양의 오스트로네시아인이 기원후 1세기에 잠깐 거쳐갔다 무인도로 남았던 이스트코스트 지역에 15세기부터 명,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페인 등이 경쟁하기 시작하였으나, 결국 모두 경쟁에서 이득을 얻지 못하고 명이 멸망함으로 인해 모두 통째로 손을 놓고 있었던 곳을, 미국이 19세기 중반에 탐사를 통해 정보를 얻으면서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척은 신잉청현의 도서지역을 1898년의 미서전쟁에서의 미국의 승전으로 인해 필리핀과 함께 개척함으로 인해서 시작되었다.
처음의 탐사 및 수십년의 시험개척 시에는 미국인만 들어갔지만, 인력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화교의 시초인 쿨리를 부르려고 고려했으나, 한국이 일본에게 국권을 피탈당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한국인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외로 나가 독립운동을 하거나 도우려고 했고, 그런 수많은 한국인들은 북으로는 간도, 남으로는 이스트코스트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국외 이주를 결단하고 내려오게 되면서, 20만이나 되는 많은 한국인들이 이스트코스트에 정착하였다. 이 대규모 이주 전에는 이스트코스트의 인구가 30만밖에 안되었다.
이스트코스트의 한인들은 생계를 악착같이 이어나가며 개책해 일궈나가고, 결국 정착에 성공하는 한편, 조국의 독립운동에 뛰어들어들기도 하였다. 1919년 3.1 혁명 당시에 이스트코스트 지역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만세 행진이 대규모로 일어났으며, 3.1혁명의 성공 소식을 들은 이스트코스트 한인들은 그에 따라서 이스트코스트의 한인을 하나로 모을 한인단체의 필요성을 높였다. 이로서 1919년 6월에 이스트코스트 한인회의[2]가 탄생하였으며, 이스트코스트의 한인들은 당시 제정 일본에 있던 한인들과 같이 당장 돌아가기에는 경제적인 기반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극소수만이 한국으로 귀국하고, 남은 대다수는 이스트코스트 일대에까지 제정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된 1942년까지 경제적 기반을 갈고 닦으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연락이 닿은 한국의 친족들에게 경제 활동 및 학업 활동을 위한 송금에 매진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당시 제정 일본의 입장서 류큐 제도와 인접하였기에 침략 및 군사 전략에 용이하다고 여겼던 이스트코스트는 결국 1942년 4월부터 시작된 이스트코스트 전투를 통해서 1942년 7월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이에 즉각 일본군의 잔악함에 반발한 이스트코스트 주민들은 반일감정이 있던 한인들을 중심으로 게릴라 전쟁을 전개하면서, 차차 많은 미국계도 이 게릴라 전쟁에 한인들과 같은 레지스탕스로 참여하게 되어, 살아남기 위해서 낮에는 일장기를 걸고, 밤에는 성조기나 태극기를 걸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에 따라 2년 간의 치열한 싸움과 전쟁 말 공습에 힘입어 1944년 10월 일본군을 가까스로 축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 사이 일본은 이스트코스트의 시민을 학살, 강간, 강제징용하는 등의 전쟁범죄를 저질렀고, 결국 전쟁 직전 인구 70만 중 전쟁학살 피해 6만, 게릴라 전사 3만, 강간피해자 4만명, 강제징용 피해자 2만명, 원치 않은 혼혈아 4만명 등을 남기며 전쟁 말의 공습 등과 함께 인명피해 외에도 수십년을 일군 시가지가 일부 콘크리트조 중층 건물을 제외하고 잿더미나 돌더미로 변하는 등의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하지만 이스트코스트 시민들은 그런 끔찍한 전화의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고, 전후 전쟁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시 정부 차원의 정신과 치료 지원 등이 이어졌으며, 이는 독립한 이후에도 이어져 지금까지도 지원되고 있다. 다만 일본이 어떤 나라겠는가. 지금까지도 정부의 사죄를 못 받고 있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같이 산다고 해도 말이다.
이윽고 한인과 미국계가 손잡고 그렇게 다시 악착같이 일어나면서 베이비붐이 불어왔으며, 제정 일본에 있던 한인의 상당수가 한국으로의 귀국 내지는 이스트코스트로의 이주를 선택하면서 한인 인구가 추가로 유입, 이에 따라 어떻게든 전후복구를 빠르게 끝마치려고 누력했으며, 이로서 1950년에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한다. 그리고 전후 이스트코스트 시민의 애향심이 독립 촉구의 원인으로 바뀜으로 인해서 독립 여론이 꾸준히 높아지고, 1956년, 이스트코스트의 독립을 결정짓는 주민투표에서 압도적 다수의 찬성을 통해서 독립 쟁취를 확정짓고, 미국 의회에서 "이스트코스트 및 바시 제도 속령에 대한 독립기본법"의 통과로 독립에 성공한다. 독립이 늦어진 이유는, 독립을 하되, 전후복구를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독립하자는 방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후 이스트코스트는 고도성장을 통해 잉청저우 제도 연방의 일원으로서 잉청저우와 함께 일본민국과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의 후방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여, 압력을 받치는 받침대로서 활용되었으나, 70년대 이후의 잉청저우 도시권의 급속한 팽창과 이스트코스트 도시권의 조직, 1970년대 후반 이후 도시화 완성단계에 접어듬을 통한 잉청저우 도시권과 이스트코스트 도시권 간의 연담화로 인한 대규모 메갈로폴리스의 탄생으로 초 거대 도시권, 초 거대 생활권을 형성, 그 결과 이스트코스트의 생산(공업) 기능은 중화학공업을 제외하고 동도현의 카만스 시와 와탄나 시, 신잉청현의 세이란 시와 잉청구팅 시 등지로 이전하고 이스트코스트는 급속도로 소비도시로 재편, 그 결과 경공업의 빈자리를 서비스업과 사무업이 메꾸게 되었으며, 현재 이스트코스트는 잉청저우의 위성도시 겸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중개 거점지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산업 편중이 나타날 것을 우려한 이스트코스트 시정부에서는 2000년을 시작으로 첨단산업 유치 등의 산업 다각화를 본격 추진하게 되었다. 인구는 2013년 4백만을, 2017년에 5백만을 넘었다.
행정구역[edit | edit source]
자치구 | 한자명 | 인구 | 최대다수민족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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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구 | 西區 | 792,229 | 미국계 | |
노스구 | 北區 | 1,928,320 | 미국계 | |
이스트구 | 東區 | 750,184 | 미국계 | |
센트럴구 | 中區 | 372,010 | 미국계 | |
사우스구 | 南區 | 720,756 | 미국계 | |
하버구 | 港區 | 788,310 | 미국계 | |
이스트코스트 직할시 | 東岸直轄市 | 5,351,809 | 미국계 |
국방[edit | edit source]
잉청저우 제도 연방군에서 육군의 13사단(통칭 이스트코스트 부대), 해군의 태평양 작전사령부,공군의 이스트코스트 항공사령부가 주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