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의 여명 세계관/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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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의 여명 세계관은 3개의 대 분기점과 8개의 중간 분기점, 10개 이상의 소 분기점 등을 통해 현실과 다르게 역사를 진행시켜와 오늘날에 다다랐으며, 그 결과로 독특하고 특색있으며, 민족적이고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세계관 설정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역사적 분기점에 대해 다룬다.

역사적 대 분기점[edit | edit source]

  • 비 미주 서반부 대 분기점 : 632년부터 718년까지 이베리아 반도에서 페르시아, 예맨에서 레반트에 이르는 넓은 땅 일대에서 벌어진 우마야드 왕조의 대규모 정복이 660년을 전후하여 이슬람교로 개종한 비아랍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등 차별을 둔 것에 기반해 이집트인-로만 아프리카인-베르베르인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성공하면서 그들의 나라가 세워지며, 이슬람 세력은 그들과의 싸움과 이슬람의 정복전쟁이 장기화되었고, 그 사이 이베리아의 정복이 현실과 같이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막히고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성립으로 레콩키스타가 발생하면서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의 1차 십자군 전쟁이 벌어졌고, 이를 통해 이슬람교의 정복이 아랍인이 다수를 점하던 아라비아 반도와 레반트에서 멈췄다.
  • 비 미주 동반부 대 분기점 : 비 미주 서반부 대 분기점이 구현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산조 제국의 멸망 이후 페르시아에 다시 조로아스터교 국가가 세워지고, 그로 인해 화레즘 지역이 조로아스터교화 되면서 조로아스터교가 중앙아시아 남부와 아프가니스탄, 현실의 파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퍼졌으며, 이로 인해 수/당 이후의 중국 왕조들이 중원에서 뻗어나가지를 못하고, 그 역설로써 북방과 서방의 이민족과의 경계에 더 많은 방어를 투입하게 되어 만리장성 이남의 중원 영토만을 지키게 된다.[1]
  • 미주 대 분기점 : 바이킹은 현실과 같이 북아메리카를 개척했으나, 아메리카 원주민 중 북방에 살던 민족과 이누이트에게 철기 문명을 전수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철기 문화가 전반적으로 퍼지게 되어, 아메리카 원주민이 미주 외의 대륙에 존재하는 온갖 질병에 면역됨과 동시에 인구가 증가하면서 철기 문명을 꽃피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만의 중세 문명을 구축하고 남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북아메리카를 통틀어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었던 미주 원주민이 50개 정도의 큰 민족으로 합쳐지며 정리되었다. 이로 인해 영국-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식민지를 개척해야 했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하는 미주의 방대한 식민지 면적의 20%만을 식민지로 만드는 데에 그쳤으며, 이는 근대 이후에 미합중국의 영토 확장이 루이지애나의 동부 지역에서 멈추어버림과 동시에 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의 영토가 현실보다 다소 축소된 형세로 표출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합중국과 브라질,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의 북미 대서양 연안 지역의 서구 식민지 출신 국가나 브리티시컬럼비아 공화국, 칠레, 에콰도르, 벨리즈 등의 몇몇 예외에 속하는 서구 식민지 출신 국가를 제외하고 미주 곳곳에 각지의 미주 원주민 기반 근대 국가가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인과 북미 북부의 미주 원주민 출신 민족의 혼혈로 형성된 메티스인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미주 원주민과 합쳐 매니토바 일원에서 국가를 건국하고, 본래라면 오클라호마로 쫓겨났어야 할 체로키족 등의 현실의 미국 동남부에 거주했었던 민족이 힘을 키워 이주를 피하게 되면서, 미합중국에서 미주 원주민이 차지하는 인구 비중은 현실과 달리 무시 못할 수준[2]이 되었다.

역사적 중간 분기점[edit | edit source]

  • 중간 분기점 1 : 세계관 내에서는 아드리아 해상에 누아달마타 도서군이, 타이완의 동부와 류큐의 남부에 잉청저우 제도가 형성되었고, 북태평양 해상에는 헤이커우 섬이 홀로 떠있게 되는 등의 가공의 도서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도서에서는 사람이 살지 않다가 각각 19세기 초, 3천년 전(잉청저우 섬 남부), 16세기(잉청저우 섬 북부), 19세기 중반(잉청저우 섬과 바시 제도를 제외한 잉청저우 제도 전역)[3], 20세기 중반(바시 제도), 17세기(헤이커우 섬) 등으로 비교적 늦게 사람이 정착하게 되었다.
  • 중간 분기점 2 : 현실과 달리, 아프리카 대륙의 민족들은 비 미주 서반부 대 분기점에 의해서 생긴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교역 및 교류하면서 중세 문물을 전래받았으며, 이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의 민족들 스스로가 부족에서 만족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서 대제국이나 왕국이 분열을 극복하고, 14세기 경에 이들 왕국 및 대제국 중심의 결집을 시작으로, 16세기 경에서 18세기 경에는 부족들이 모두 중세 수준의 문명을 수립하였고, 케이프 식민지와 오렌지 자유주 일대의 아프리칸스인 및 하우텡 지역 및 더반을 중심으로 하는 나탈 일대의 앵글로아프리카인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계 민족과의 교류를 통해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이들의 민족화가 더욱 가속되었다. 이로 인해 남아프리카는 수많은 흑인 국가 및 백인 3국으로 나뉘었으며, 유럽 국가들은 이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에는 북아프리카 대륙을 중심으로만 식민지를 만들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작은 소국들을 보호령화 시키는 선에 그쳤고, 미국의 해방 노예들은 먼로비아를 중심으로 한 좁은 지역에 밀집적으로 정착해 라이베리아의 영토는 현실의 1/4로 쪼그라들며, 인구는 현실의 1.5배에 그 인구가 전부 해방 노예의 후손들로만 이루어진다.
  • 중간 분기점 3 :

역사적 소 분기점[edit | edit source]

  • 소분기점 1. 비 미주 서반부 대 분기점에 의해서 보스니아인이 보고밀파를 거쳐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카톨릭을 받아들였다가 종교개혁으로 인해 개신교로 개종하게 되며, 현실과 달리 개신교 민족, 개신교 지역이 되었고, 그에 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거주 인구의 절대다수는 루터교나 스코틀랜드 장로교에 기반한 개신교를 믿고, 차카브 방언을 표준어로 하는 보스니아어를 사용하는 보스니아인이 되었다.
  • 소분기점 2. 산업혁명과 민주주의 혁명이 현실과 같이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일어나게 되었고, 이는 다른 분기점과 맞물려 같이 돌아가게 됨과 동시에, 분기점 4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소분기점 3-1. 홋카이도의 서부가 마츠마에 번 치하에 있었던 17세기에, 홋카이도 서부를 차지하던 당시 마츠마에 번과의 무역으로 먹고 살아야 했던 아이누족은 갈 수록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본인 다이묘/영지에 대항하고자 자신들의 전통을 바꿔가면서까지 조직화해 맞서려 했고,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를 뒤에서 지원해 아이누족이 니브히족, 오로치족 등과 함께 사할린 섬에 국가를 수립하게 되었다.
  • 소분기점 3-2. 한편으로는, 청이 만주족에 한해 봉금령 적용에 예외를 두게 되면서 간도를 제외한 만주에는 만주족이 많아지게 되었고, 이들은 수렵 대신에 지도층이 있는 민족으로써 문물을 전수받아 농사를 짓게 되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이러한 결과로 간도를 제외한 만주 전역에 만주인의 민주국가가 생겨났다.
  • 소분기점 4. 발트연방공화국의 전신인 발트 공화국의 성립에 영향을 끼치는 발트 대봉기가 성공하여, 제3차 폴란드 분할이 실패, 그로서 폴란드 분할이 무력화되고, 폴란드와 발트3국을 중심으로 하는 주권국가 벨트가 생기며, 이후엔 이러한 주권국가 벨트의 존재로 인해 민주주의와 민족주의가 유럽에 전파되게 되면서 프랑스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던 프랑스 혁명 전쟁(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달마티아인이 프랑스를 피해 당시 근접한 무인도이던 누아달마타 제도로의 이주를 통해 살아남아 문화와 민족을 보존하였고, 결과적으로, 라틴으로부터 유래된 로망스 문화가 유럽을 더 뒤덮었다.
  • 소분기점 5-1.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적백내전(소수민족 독립전쟁)이 일어남을 틈타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내 제정 러시아 치하 소수 민족의 봉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 연해주(외만주) 곳곳에 독립국가를 세우게 되었으나, 적백내전 후기에는 중앙아시아 국가와 북아시아 일부 국가가 소련의 점령으로 소련에 강제 편입당했다.
  • 소분기점 5-2. 그 사이, 한국에서 독립운동세력이 안명근 사건을 피하면서 살아남아 지하에서 움직이는 상태에서 3.1운동이 민족대표 33인이 계획을 변경하지 않고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신민회를 중심으로 한 비밀 연락으로 독립군 및 독립운동가들의 대연대를 통해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는 대혁명으로 승화되며 성공했다.
  • 소분기점 6-1. 그 이후 18세기 말~19세기 초의 혁명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점차 표준화 되었고, 헤이커우 섬에서는 17세기 이주한 한족들에 의해 세워진 한족 공사국가(公司國家)[4]가 민주공화국으로 전환하는 격변을 겪으며, 공사국가에서 더 나아가 근대 제도에 기반한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는데 성공했다.
  • 소분기점 6-2. 시암은 아유타야 왕국 시절의 번영과 중개무역을 통해 온갖 문물이 시암으로 유입, 그 결과를 통해서 유럽의 혁명적인 사조가 모종의 이유로 아유타야로 흘러들어간 뒤에 여러 계몽주의 운동가가 나와서 타이의 실정에 맞게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민족주의를 개조하면서 민주주의를 근본으로 삼아 국민을 계몽하였다. 결국 아유타야가 버마 꼰마웅 왕국에 의해 멸망해버림과 동시에, 탁신 장군이 주축이 된 저항군은 탁신 장군을 중심으로 뭉치되, 민족국가 겸 공화국을 성립시키고 버마로부터 독립을 되찾으면서 프랑스, 발트 공화국, 좌우루테니아 공화국, 폴스카 공화국보다 먼저 세계 최초이자 동남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정 국가를 탄생시켰다. 그 이후 미얀마에서는 20세기 이후 아웅산 장군이 암살을 피하면서 군부의 힘이 매우 약해져 문민통제가 확보된 채로 연방제 민주 국가가 출범하여 지금에 다다랐고, 필리핀은 독립 이후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아내의 말을 듣고 죽음을 피함으로써 재선됨을 통해서 안정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고, 이후 수입대체 공업화 외에도 잉청저우 제도 연방과의 밀접한 교류를 통해 산업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 소분기점 7. 그와 함께 세계 전반에서 대의민주주의와 보통선거가 표준이 됨과 동시에 우드로 윌슨 미합중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호응을 얻으며, 2세대 신생 독립국가들로 하여금 주권국가가 넘쳐나는, 주권의 바다 시대가 개막하였다.[5]
  • 소분기점 8. 일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을 받아들여 대대적인 침략과 본성을 제어하지 않고 부추기는 데에서 나오는 여러 악질적인 전쟁범죄를 벌였고, 나가사키와 히로시마가 핵폭발로 날아갔음에도 더더욱 발악하게 되면서 군대를 직접 투입해 일본 본토를 점령키로 하면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의 댓가로 소련 위성국으로 공산화되거나 소련으로 강제병합된 국가들[6]이 앞에 위치함을 통해, 간토 지방과 도호쿠 지방, 호쿠리쿠-고신에츠 지방의 경계를 따라 소련 위성국인 도호쿠-홋카이도 인민공화국과 일본민국이라는 두개의 국가로 분단되었다. 베를린과 달리 도쿄의 분단은 피할 수 있었지만, 이로 인해 일본민국은 수도 도쿄가 전방에서 가까워져[7], 1995년 통일 이전까지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다.
  • 소분기점 9. 국공내전에서 장제스는 만주를 무리하게 침공했다가 밀렸음에도, 중일전쟁에서 일제의 패망이 군대 직접 투입으로써 이뤄지는 상황에 놓인 것과 맞물려 공산당의 세가 급격하게 줄어 한줌도 안 되는 세력이었다가 국민들의 지지로 겨우 남부를 장악한 상태였고, 자신들의 잘못이 국가를 이렇게 최악으로 몰고간 것을 인식하고 장징궈만을 신뢰하며 최대한 개혁 정책을 실시, 그와 동시에 미국의 양쯔강 휴전론을 수용하는 것으로 모자라, 이를 발전시켜 화남 북방계 휴전론을 창설하고 이를 주장했다. 이를 미국이 수용함을 통해, 화남 북방계 휴전론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휴전선 겸 국경이 양쯔강을 끼고 있는 성들의 최북방경계로 확정된 채 국공내전이 휴전으로 끝이 났다가, 1989년 천안문 항쟁의 성공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붕괴되고 후순, 후신이 탄생했다.
  • 소분기점 10. 그로 인해서 1950년대 이후로 현실과 같이 유럽이 뭉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일대도 평화를 위해 과거사를 청산하고 예전 시대의 감정을 내려놓으며, 봉건시대에 기반했던 국제관계를 재구성하자는 흐름이 일어난다. 그와 함께 유럽이 하나로 뭉치며 했던 행사들도 현실과 비교하자면 유라시아 단위로 전격 확대되며[8], 좁게는 동아시아, 넓게는 유라시아 통합을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외교적인 갈등이 몇 차례 있어왔음에도 2010년대 들어 동아시아 연합이라는 지역연합을 구성, 그에 따라 동아시아 통합이 유럽 통합과 대등한 수준으로 완성된다.[9]

각주[edit | edit source]

  1. 하지만, 이는 발해 부흥운동이 성공해, 지금의 간도에서라도 그 민족을 보전하면서 고려인(한국인)과 같은 문화/언어를 공유하게 된 발해인들이 슬로바키아인 마냥 정체성을 지키면서 북방의 퉁구스 민족과 서로 죽여라를 시전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기도 하다. 물론 그 발해인은 한국인으로 통합되고 합류되었지만 말이다.
  2. 2010년 인구조사 기준 36.8%, 백인은 해당 조사에서 55.9%가 나왔다.
  3. 13세기에 잠깐 정착민이 산 경우도 있었다.
  4. 공사공화국(公司共和國)이라고 칭하며, 한족들이 해외로 나아가서 세운 공사들에서 기반한 과두정 체제의 공화국이다.
  5.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꺼지지 않고,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아프리카 국가들의 탈 보호령 주권 회복, 잉청저우 섬의 중화민국으로부터의 독립 쟁취와 및 잉청저우 제도의 연방국가 수립 등을 시작으로 남은 소수민족 혹은 식민지역의 독립을 통해 더 큰 물결로 이어지게 된다.
  6. 그래도 야쿠티아, 축치, 캄차카 등의 극북동 5 국가들은 이 세계관에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코소보 등으로 축소되어 대(大)세르비아 왕국 - 사회주의 연방으로 축소된 유고슬라비아(세계관에서는 앞서 언급한대로 대(大)세르비아 사회주의 연방)의 모델을 따랐다. 하바롭스크 지역의 아무르 공화국은 대한민국의 영향력과 남북중국 분단으로 끝난 국공내전에 의해 공산화를 피해갈 수 있었다.
  7. 그래도 혼슈 섬의 길이도 엄청나게 긴 편에다, 간토평야의 넓이가 의외로 엄청 넓은지라, 현실의 서울-휴전선 간의 거리보다는 훨씬 멀다.
  8. 이에 대한 예시로, 이 세계관에서 방송구역 상의 유럽 방송구역 및 아시아/태평양 방송구역 상의 EBU 및 ABU(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 가맹국으로 확대되어, 유라시아 전역의 참여 국가들로 대상이 확대되며 유라시아비전 송 콘테스트가 된 현실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있다.
  9. 그에 따라 세계관 내에서는 아랍연합, 아프리카 연합 등도 유럽연합과 비슷한 구조의 지역연합기구로서 변화하게 된다.